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우연히도 내가 산 책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책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기억이 나고 지니고 다닌 것은 딱 요 내용 뿐이었다. 막내의 재치가 맘에 들었나봉가.ㅎㅎ
서당에 다니는 3형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서당 훈장님이 3형제에게 커서 뭐가 되겠냐 물었는데요.
첫째가 정승이 되겠다고 답하고, 둘째가 장군이 되겠다고 답하자
훈장님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뭘 할지는 뭐가 될지는 모르겠고 개똥 세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는데요.
훈장님이 왜 그러냐고 묻자 막내가 말하기를,
나보다 책을 읽지 않는 첫째형이 정승이 되겠다 하니 개똥을 먹이고 싶고,
나보다 겁이 많은 둘째형이 장군이 되겠다 하니 또 개똥을 먹이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훈장님이, 그럼 마지막 한개는?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개똥이 훈장님 것이라 말을 못하게 되면 그 개똥은 자신이 먹어야 한다고 말이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中-
책에 참 많은 내용이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도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글은 사실 '보물' 같은거다. 본인을 아는 사람들이 종종 말하는 '겁없이 말한다'는 그 말엔 아마도 저 글을 읽었을 때의 내 마음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읽는 내내 재미있었던 책이었지만 나는 오늘 홍세화라는 검색에 앞서 '세 개의 똥', '세 개의 개똥 이야기' 등을 먼저 검색했고 거기서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처럼 내가 경험한 것의 원조(?)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집에 가서 다시 읽을 의향도 있으나 지금 읽고 있는 책(빠빠라기)이 우선되어야 하니 TODOLIST에 넣도록 하자.)
그때?
처음 읽은 그 때는 말 많고 탈 많은 대학원 시절. 하고 싶은 말을 줄이라 배웠고, 잘하는 것을 어느 정도 한다고 말하라 배웠고, 못하는 것을 할 줄 안다고 말하라 배웠지만 그로인해 잘 듣는 나를 찾게 되었고, 사람들의 기대보다 잘 하는 나의 모습을 찾게 되었고, 다양한 관심사/경험을 가진 나를 찾게 되었다. 저 책을 읽은 그 때도 얼마나 많은 세 번째 개똥을 먹었으며 '지금 먹는 개똥이 앞으로 먹을 개똥을 줄여주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꼰대이기도, 꼰대가 아니기도 한 중간자로써 종종 아무런 이야기 없이 '말하라, 다른 의견이 있다면' 이라고 앵무새처럼 앵앵거려 봐야 누구도 말하지 않을 것을 알고, 그렇다고 아무 말을 안한다면 그 경우도 말하지 않을 것을 피하고싶다는 마음에 넌지시 그 쪽 방향으로 빵가루(?)를 뿌리는 등의 일을 한다. (가끔은 나의 꼰대들도 나를 이렇게 대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들의 생각과 닮아져버린것에 있어서 씨익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것과 별개로 나와 알고, 앞으로도 알고 지낼 사람들이 모두 개똥을 먹지 않는 사람이 되길. 차라리 서로 싸우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지라도 내 주변이 개똥을 먹지 않게 하고싶다.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존재한다. 그로 인해 마음이 아파한다면, 그때마다 꺼내보려는 목적으로 저장하는 글이다. 그리고 지금의 지금이 나중엔 그때가 될 테니 그때도 바뀌지 않는 내가 되길.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처럼 살고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