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또한 앞선 로드 버드 처럼 중고서점에서 손발품 팔며 한 시간 여 뒹굴다 찾은 책이다. 또, 책을 찾음과 동시에 새로운 경험도 한번 했으니 아주 효율적으로 행동했다고 스스로 좋아라 했다.
2019/09/12 - [vita] - 중고 책 되팔기 (feat. yes24 중고서점)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 특별한 기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가지고 오는 책들은 묘하게 닮아있다는 걸 늘 느낀다. 이번 책도, 저번 책도, 저저저저번 책까지도. 그 내용에 있어서 가지고 있고 싶은 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을 뿐.
책 선택 배경
이 책은 꽤 재미 있었던 나의 고교 생활과도 연관이 있는 책이다. 아는 사람들도 들으면 놀란다는 내 이력 중 하나는 바로 시 문학 동아리 회장이다. (경주고등학교 옥돌 30문 회장) 졸업하기 전에 총 세 번의 시화전을 경험했고 그 중 한 번은 직접 모금부터 개최/품평회 진행과 쫑파티까지 모두 디렉팅하였었다. 이런 경험을 보통 자소서에 쓰면 누구나 쓰는 회장 경험이라 폄하받기 일쑤라 쓰지 않음으로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가끔 센치할 때 작성하는 자소서엔 쓴다..ㅎㅎ) 이런 이유로 '시'라는 문학 장르에 친숙한 편이고, 또 좋아라 한다. 시인들이 보는 시각은 또 수필가와는 다른 맛이라는 게 있어서.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무척이나 뿜뿜하게 되는 그런 기간이었다.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핸드폰 교체와 몇몇 이슈로 그때그때 생각했던 모든 일들을 글로 옮기지 못했다는 게 아쉽지만 그것도 꽤 좋아하 하는 일. 이렇게 보면 내가 좋아라 하는 게 참 많은데 멀리서 보면 난 타고난 비평가.
인상 깊은 책 내용
너~~무 많은 접힌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좋은 내용이나 기록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위 쪽 모서리를 접고 다시 보는 버릇이 있는데 아무래도 시험공부하던 버릇인거 같다. (내가 책 읽는 걸 본 사람은 안다. 근데 몇 없을 듯 책을 숨어서 보는 타입이라.) 먼저 작가부터 보니 #김제동의 톡투유, #어쩌다 어른 등의 프로그램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그래서 얼굴이 익숙했던 사람이었나 보다. 그리고 이 책은 약간 단행본 같은 느낌인데, 앞선 책으로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있어서 그런거 같다. 그래서 인지 이 책도 제목 앞에 시를 잊은 그대에게. 그 두 번째 이야기라는 프리픽스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의 머리글은 아니지만 꽤 앞 쪽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사람들이 시로 대화를 하며 지낼 수 없지만, 이따금씩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에서 매우 공감했던 부분이다. 아마도 이런 느낌으로 작가님은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풀어나간다.
시는 지배 언어의 자기도취를 일깨우는 변방의 언어
그리고 종종 띵언 처럼 나타나는 문장에서 정말 많은 주제의 생각들을 해본 것 같다. 또 시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노래 소설 속 문장도 인용을 하는데 그것이 또 책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훌륭한 도구로 책을 읽는 내내 포기하지 말라고 도와준다. 나도 꽤 아는 글들이나 노래들이 있는 걸 보니 '나이가 좀 차긴 했나보다' 하며 읽었다. (또 이 얘기를 으른들 앞에서 하면 혼나겠지만.)
편집은 목소리 사이의 공백을 없애는 일이잖아.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에서 기침이나 한숨 소리, 침 삼키는 소리 같은 걸 찾아내서 업애는 거야. 그러면 이상하게 되게 외로워져. -김연수, <달로 간 코미디언> 중에서
이 책 세 번째 장인 :목소리는 듣는다. 에서 인용되는 부분으로 먼가 저 책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저 부분이 너무 좋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인용이었다. 요즘같이 블로그, 유튜브 등 많은 종류의 컨텐츠가 있고 각각이 편집이라는 절차를 당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상황 (누군가는 본업으로도 하고 있는)에서 저런 문장을 읽고 나니 먼가 외롭지 않은 컨텐츠를 만들고/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또 열심히 고민을 하기도 했다.
시는 자기 것으로 전유될 때 오독조차 생기를 얻는 법이다.
학업으로의 시는 정말 지리지리하게도 암기의 연속이었다. 언어영역의 점수가 항상 총 점을 이끌어 가던 나로써는 이 쌍두마차(국어, 수학) 중 하나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수필/고문학 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새로 나오는 시는 나만의 해석이 필요했고 그 당시에 나는 꽤 평범한 시각을 가졌는지 대부분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저 문장은 '역전 앞' 같은 문장으로 '자기 것으로 전유'라는 표현이 계속 거슬렸다. 물론 이게 맞는 해석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거슬렸다.
사랑이 올 때는 두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최영미, <행복론>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꼭 해야지라고 생각한 건 정말 좋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내 글에 박제해두는 것. 그것을 보기 위해 이 리뷰를 다시 읽기도 하는 그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나는 핸드폰 메모에 저장된 "글귀"라는 카테고리가 있는데, 여기에는 시나 비석에 쓰여있던 글따위가 적혀있다. 아내에게만 몇 번 보여줬던 건데 약간 내 보물 시리즈 같은 느낌이다. 이런 글들을 보고 저장해두고 또 볼 수 있다는 게 먼가 좋다. 행복론도 작가가 말한 것 처럼 정말 아찔한 롤러코스터같은 시이다. 누가 나한테 저렇게 얘기한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 욕을 해야할 지 고맙다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이 중 몇몇 줄은 나도 종종 쓰는 말이 있어 반갑기도 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 내줄 시간이 이제 없다. 나 자신, 내 일, 친구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더는 매일 밤 <뉴스아워>를 시청하지 않을 것이다. 더는 정치나 지구 온난화에 관련된 논쟁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중략) 두렵지 않은 척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올리버 색스, <고맙습니다>
먼가 나 같은 글이었다. 언젠가 아내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걸 왜 고민을 하냐고. 그 중 하나가 정치였다. 투표를 통해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후의 일은 강제성이 없는 걸 알기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무언가 바꾸기 위해서는 분야에 최고가 되는 게 우선 되어야 한다는 걸 얘기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더이상 뉴스를 보지 않는 다는 작가의 말은 매우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매우 귀여운 부분이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인데 왜 귀엽게 느끼는 지는 다들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https://www.businessinsider.com.au/oliver-sacks-on-leading-a-rich-deep-and-productive-life-2015-8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빚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중략)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우화의 강>
강 같은 맑은 사람을 만나 오래 사귐을 이어가는 일은 죽고 사는 것보다 어렵다. 그렇기에 퍽 중요한 일이다.
Vilhelm Hammershoi, <View of Refsnas>
세 가지 글이 하나의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져서 수집(?)했다. 첫 번째 수집은 앞서 말한 보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작가는 시인의 상상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보다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이 부분을 보는 중에 이런 이미지가 머리 속에 그려지면서 먼가 기분이 따뜻해졌던 거 같다. 다시 정리하면서 읽는 동안에도 기분이 좋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수집은 '나도 누군가에게 강 같은 사람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이런 말은 이제, 아주 공손히 말하건대, 홀로 길 가는 개에게도 하지 말자
중간에 헝그리 정신과 관련된 말을 풀던 중 작가가 쓴 말인데 재미있어서 수집했다. 이런 문장이 문제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일순한 내가 잠시 부끄러워졌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저장하기로 한다. '너무 박애하지도 박해하지도 말며 살면 그게 중도인데 그게 또 어렵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하.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곽재구, <사평역에서>
왠지 모르겠지만 '이 건 꼭 저장해야지'라며 책 한 쪽 모퉁이를 접었던 기억에 잊지 않고 수집했다. 그리고 또 한 편의 시,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지만 내가 중학생일 때 이 시를 본 기억은 없으니 이 시는 아무래도 내가 졸업하고 교과서에 등재(?)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참 고맙다라고 표현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도종환, <어떤 마을>
끝으로
책을 읽는 내내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시 문학을 온전히 즐길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지 자꾸 뜻을 파악하려고 하고, 평가하려고 하고,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고,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는 작가의 생각을 유추하고, 그 생각이 나와 같지 않음에 안타까워하는 이런 모습들이 아직 내가 재미있다 나는.
+ 책에 인용된 글귀들에 대해서는 친절하게도 수록작품을 나열해주었다. 그래서 나도 친절하게 그 부분을 찍어서 공유한다. 이건 물론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함. 읽고 싶은 책을 바로 찾기 힘들 때 쓸 수 있는 보물 창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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